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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ough


Enough                                                                                                                                                       김영하 목사


     영어 단어 “Enough”는 “충분한” “족한”이란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제 “그만하면 되었다”는 뜻이고, “더 하면 지나치니 여기서 그만한다”는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다보면, 안함만 못한 경우를 경험합니다. 충분한데, 족한데, 더 해서 손해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정말, 충분한지 잘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언제”가 충분한 때이며, “얼마”의 양이 충분한 양일까요? 언제, 얼마가 적당하고 충분한지, 언제, 얼마나 더 하고 빼야 하는지는, 하나님이 가장 잘 아십니다. 그래서 “이제 그만 되었다. 충분하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이 참으로 복된 사람입니다. 

     처음에 히스기야 왕은 바로 그런 복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만 되었으니 세상과의 이별을 준비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죽을 병이 들어 누워있을 때,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히스기야 왕의 삶을 정리케 하셨습니다(왕상20:1).     

     그런데 히스기야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들은 그 말씀이 서러워, 눈물로 자신의 회복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리고, 결국, 15년의 생을 더 연장받습니다. 그런데 문제의 상황은 여기서 부터 발생합니다. 15년 연장받은 그 기간에 세 가지 중대한 실수를 범합니다. 

     첫째, 병에서 회복한 히스기야를 위로차 방문 온 바벨론 왕의 사자들에게 히스기야는 왕궁의 모든 보물과 병기, 그리고 기타의 것들을 보여 주는데, 그것이 실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히스기야에게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날이 이르리니 (네가 보여준) 무릇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열조가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을 바벨론으로 옮긴바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또 왕의 몸에서 난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왕하21:17-18)

     나라의 귀한을 것을 다 보여 주었다고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앗수르의 침공으로 고통받았고, 중병으로 죽다가 살아난 히스기야는 자신의 눈에 보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의지할 대상이 필요했는데, 그게 바로, 신흥제국으로 부상하고 있던 바벨론이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히스기야는 하나님보다 바벨론을 더 의지한 것입니다. 역대하 32장은 이 때의 상황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바벨론 방백들이 히스기야에게 사자를 보내어 그 땅에서 나타난 이적을 물을 때에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그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더라”(대하32:31) 히스기야는 이것이 하나님의 시험인 줄 몰랐습니다.

     둘째, 이사야 선지자의 말(징계에 대한 하나님의 메시지)에 대한 히스기야의 반응입니다: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의 전한 바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니이다 만일 나의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왕하21:19).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더라도 히스기야 자신이 사는 동안만 태평하면 괜찮다는 말입니다. 후손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괜찮다는 반응입니다. 히스기야가 변했습니다. 심판의 메시지를 들었을 때, 하나님께 엎드려 심판이 없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하는데,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만 괜찮으면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셋째, 히스기야의 뒤를 이을 아들 므낫세의 탄생입니다. 므낫세가 왕으로 즉위할 때의 나이는 12세였습니다. 히스기야가 15년의 생명을 연장 받은 뒤에 태어났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아들이 히스기야가 이루어 놓은 모든 신앙개혁을 뒤엎어 버렸고, 산당을 다시 세우고, 바알을 위하여 단을 쌓고, 아세라 목상을 세우고, 하늘의 일월성신을 숭배하며, 자녀를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점을 치고, 사술을 행했고, 신접한 자와 박수를 불러들여 그들의 말을 믿었습니다(왕상21:2-3). 자신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백성들까지 그렇게 하도록 만들었습니다(왕하21:16).

     만약, 히스기야가, 원래,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15년의 생을 더 연장받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가, 연장해서 살았던 15년간 범한 실수는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잠언 25장 2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꿀을 많이 먹는 것이 좋지 못하고 자기의 영예를 구하는 것이 헛되니라.” 과하게 먹는 꿀과 과한 명예욕은 결국, 손해를 불러온다는 뜻입니다.  “너는 이웃 집에 자주 다니지 말라 그가 너를 싫어하며 미워할까 두려워하라”(잠25:17). 이웃 집과 관계를 끊으라는 말이 아니라, “과한 방문”을 삼가라는 뜻입니다. “적당한 때”와 “적당한 양”을 알고 행는 것, “이만하면 됐다”는 것을 알고 행하는 것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 지혜이자 복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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