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있는 교회

이웃과 민족과 세계를 향하여

은혜


은혜         (김영하 목사)

     영국의 동물 행동학자이자 진화 생물학자인 클린턴 리차드 도킨스는 자신의 책 ⌜에덴의강⌟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연계에서 해마다 발생하는 모든 고난은 상상을 초월한다. 가공할 물리적인 힘과 복제가 다스리는 우주에서, 어떤 존재는 상처를 입고, 또 다른 존재는 운좋게 살아 남지만, 거기에는 어떤 법칙이나 인과 관계, 더 나아가 어떤 정의도 없다. 인간이 아는 우주는 그 특성을 그대로 갖고 있을 뿐, 그에 대한 어떤 설계나 목적, 선과 악은 찾아 볼 수 없다. 그저 잔인한 무심함만 있을 뿐이다.” 도킨스의 관점에서 보면, 지구를 비롯한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그저 우연이라는 말입니다. 어떤 목적이나 의도는 찾아 볼 수 없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나쁘지도 선하지도 않으며, 그저 무신경한 세상이라는 말입니다. 그의 무신론적 진화론적 관점이 주는 지극히 당연한 세계관입니다. 따라서 그에게는 모든게 공허하고 헛되고 무의미하며 무가치합니다.

     2012년 12월 14일 오전 9시 40분, 코네티컷 주의 뉴타운이라는 마을에 있는 샌디훅 초등학교에 무차별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어린이 20명, 교장을 포함한 교직원 6명, 범인인 애덤 랜자의 어머니, 그리고 범인까지 총 28명이 사망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한 여성은 자신의 블로그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아들 아이가 땅에 묻히던 순간, 대략 30초쯤, 어른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나는 하나님을 믿었다. 숨진 아이의 영혼이 사라지는 것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생생하게 감지했다. 그리고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Walking with God through Pain and Suffering」Timothy Keller)

     이 여인을 비롯해서, 20명의 아이들을 떠나 보낸 모든 부모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힘이 되는 위로의 말은 무엇일까요? 위에서 언급했던 클린턴 리차드 도킨스의 관점에서,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목적없이 일어난 일들이니 잊으라. 무신경한 이 세상이 가져 온 의미도 없는 일이니 잊고 살라.”는 말을 한다면 과연 위로가 될까요? 무신론자들(atheists)이나 유물론자들(materialists)의 관점에서는 그런 말밖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아니, 그들의 관점에서는 그런 말들 외에 할 말이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허무한 말들은 위로의 말이 아니라, 유족들을 가장 잔인하게 짓밟는 말입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아들과 딸이 아무런 의미없는 존재로 지워질 수 있을까요? 할머니보다, 엄마와 아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어린 아이들이 무의미함과 무가치라는 잣대로 팽개쳐질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어린 자녀를 잃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따듯한 위로의 말은 무엇일까요? 네, 없습니다. 어떤 말도 그들에게는 위로가 되지 않을 겁니다. 감히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하는지 단어조차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무신론자들과 유물론자들이 절대로 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는, 그러나 우리 믿음의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당시 28명의 장례식이 있는 날, 이곳 동남부의 흑인 청년들이 먼 길을 마다 않고 그곳으로 달려가 슬픔 속에 있던 생면부지의 유족들을 위로하는 찬양을 하나님께 올려드렸습니다.

     은혜입니다. 그렇게 함께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은혜이고, 그렇게 선뜻 달려 갈 수 있는 것이 은혜입니다. 뉴타운 총기 사건과 유사한, 아니 더 슬프고 아픈 일들이 생길 때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전능하신 하나님앞에 머리를 숙일 수 있는 마음을 갖는 것이 은혜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큰 은혜가 있습니다. 어떤 고난이 온다고 할지라도, 아무리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이 생긴다고 할지라도,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생명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믿고 체험하며 사는 일입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어떤 은혜를 누리며 살고 있습니까? 행여 진화 생물학자인 클린턴 리차드 도킨스와 같은 생각이나 말을 하고 있지는 않겠지요? 그런 입장에 있지 않는 것 자체가 은혜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알고 믿고 의지하며 사는 것이 가장 큰 은혜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2:8-9) 할렐루야!

댓글목록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