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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


유익         (김영하 목사)

     일본 작가 중 엔도 슈사쿠라는 사람이 쓴 ⌜침묵⌟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한국어로는 1991년 3월에 처음 번역 출간된 후, 여러 차례 개정된 번역판이 나온 작품입니다. 이 소설은 17세기 일본에서 일어났던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집필되었습니다.

     당시 기독교를 박해하던 일본 에도막부는 기독교인들이 십자가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바닷물이 빠질 때 한 가운데에 십자가를 세워놓고 기독교인들을 거기에 묶었습니다. 그리고 밀물이 들어와 십자가가 물에 잠길 때, 십자가에 묶인 사람들이 서서히 수장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물에 완전히 잠기기 전까지 누구든지 예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겠다고 말하면 풀어 주도록 했습니다. 두 사람의 기독교인이 십자가에 묶여 썰물로 빠진 바다 한 가운데에 세워졌습니다. 그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던 포루투갈에서 온 선교사가 그들을 위해 통곡하며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어찌하여 침묵하십니까?” 그 때 그의 마음에 이런 음성이 들렸습니다: “나는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저들의 고통에 동참하고 있다.”

     저자 엔도 슈사쿠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우리 눈에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침묵하시는 것이 아니라, 뭔가를 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제한적 사고와 눈에는 하나님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시는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침묵하신다고 항변할 수 있습니다. 엔도 슈가쿠가 이 책에서 말하는 부분을 전부 동의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이 아니라 뭔가를 하고 계시다는 부분에는 동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당하는 핍박을 없애 주지 않으시고, 그들의 고난에 동참만 하시는가? 순교당하는 사람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차라리 기적을 베푸셔서 밀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시거나, 학대하는 자들에게 형벌을 가하시는 기적을 일으키시는 것이 더 낫지 않은가?’

     하나님은 전능하시므로, 고난을 한 순간에 없앨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을 학대하는 자들을 순식간에 제거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침묵하시는 것처럼, 고난과 핍박속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고난에 동참만 하시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이 고난과 핍박을 견뎌야 하는 더 큰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과 맥을 같이 합니다.

     목회자 딕 존슨이 어느 날 호주의 시드니에 있는 어느 대학에서 “하나님의 상처”라는 주제로 강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한 무슬림 청년이 딕 존슨 목사님께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물보다 약한 존재라니 정말 황당한 이야기군요. 그러니까, 그 신은 먹고 자고 볼 일 보며 살다가 십자가에서 어이없이 죽었다는 말인가요? 만물을 지으시고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전능자가 자신보다 열등한 존재에게 고통당하고 힘없이 죽는다는게 말이 됩니까?”

     이 때 딕 존슨 목사님은 이 무슬림 청년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세상의 어떤 종교도 갖고 있지 않고, 오직 기독교만이 갖고 있는 그 독특한 내용을 깔끔하게 설명해 주어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비난한 기독교의 신이 했던 그 일을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소중하게 간직합니다. 하나님이 상처를 받으셨다는 사실 말입니다.” (「If I Were God I’d End All the Pain」John Dickson)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서 고난을 없애 주시기 보다, 우리가 고난을 잘 견디기를 더 원하시는 이유는 고난없는 무익보다, 고난을 통한 유익을 더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영광 이전에,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먼저 택하셨습니다. 그 고난과 죽음이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유익을 낳는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인내로 감당해야 할 고난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그 고난이 당신에게 주는 유익은 무엇일까요? 만약, “무익으로만 이어지는 겉 모습의 평안”과 “유익을 생산하는 고난”둘 중의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당신은 어느 쪽을 택하시겠습니까?

     시편119편을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시119:67).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어떤 고난이 찾아 오더라도,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거뜬히 모든 고난을 이김으로, 생각지도못한 유익의 주인공들이 되는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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