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 작성자 : 웹섬김
- 24-03-24 13:43
문 김영하 목사
모든 사람들은 문 앞에 서 있습니다. 학교라는 문, 직장, 결혼, 그리고 인생의 미래라는 문 앞에 서 있습니다. 힘겹게 열어야 하는 문, 이미 열려 있어 들어가기 쉬운 문, 새롭게 개척해야 하는 미지의 문 등, 다양한 문 앞에 서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문”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페타”인데, 모두 162회 쓰였습니다. 신약성경에 사용된 헬라어로 “문”은 “뚜라”인데 39회 등장합니다. 신구약 성경에 쓰인 이 문들 중에는 눈에 보이는 건축물의 문도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문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문들의 공통점은 누군가가 드나드는 통로라는 점입니 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기 직전에 어린양을 잡아 피를 발랐던 문은 눈에 보이는 건축물의 문, 즉 사람이 드나드는 통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도요한을 통해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고 말씀하셨을 때, 표현하신 “문”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문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이 하나 더 있습니다: “다툼을 좋아하는 자는 죄과를 좋아하는 자요 자기 문을 높이는 자는 파괴를 구하는 자니라.”(잠17:19) 여기에 표현된 “문”은 우리 눈에 보이는 문일 수도 있고, 보이지 않는 문일 수도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문”을 뜻하는 “페타”는 “열린 곳”이라는 뜻도 겸하여 갖고 있기 때문에 이 구절을 이렇게 읽을 수도 있습니다: “자기의 열린 곳(문)”을 높이는 자는 파괴를 자초하는 자”입니다. 여기서 “열린 곳”의 의미가 “자기 집의 대문”이라면,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자신의 교만을 드러내기 위해 공들여 세운 바벨탑과 같은 건축물의 문입니다. 그런데, 잠언의 특징인 동행 대구법을 염두하여 “다툼을 좋아하는 자”와 “자기 문을 높이는 자”가 대구를 이루도록 보면 “열린 곳”을 “다툼을 말하는 입”으로 번역 할 수도 있습니다. 즉, “자기 문을 높이는 자”를 “자기 입을 높이는 자”로 바꿀 수 있 습니다. “말로 자기를 높이는 자”를 의미합니다. 즉, “말로 자신을 높이는 자는 파괴 를 구하는 자니라.”는 뜻이 됩니다. “교만의 말, 남을 헐뜯고 깎아 내리는 말을 하는 사람은 스스로 파멸을 자초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자기 문”의 뜻이 “높이 세운 자기 집의 대문”이든지, 아니면 “교만의 말을 하는 자신의 입”이든지, 이 문은 “교만한 사람의 마음”과 연결되는 문입니다. 다른 사람을 멸시하고 무시하는, 자신만이 최고라고 여기는 자기 우상의 문이자 바벨의 문입니다. 이 문의 주인은 결국 파멸의 길로 들어서는 문 앞에 서 있는 자라는 뜻입니다.
성경은 눈에 보이는 문도 말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문도 말합니다. 그런데 그 문이 무슨 문이든지 그것을 세우고 사용하는 주인공은 바로 우리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당신은 어떤 문을 세우고 있습니까? 당신이 선택해서 들어가고자 하는 문은 어떤 종류의 문입니까? 우리가 들어가야 하는 문은 오직 한 문이고, 우리가 세워야 하는 문도 오직 하나의 문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10:7-10).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 그러나 나를 잃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 느니라.”(잠8:34-35). 할렐루야!
댓글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