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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스와 조에


바이오스와 조에  (김영하 목사)

     북해도의 가장 큰 도시인 삿뽀로에 “키따이찌죠오 교회”가 있었는데, 이 교회의 주일학교에 노총각인 유년부 부장집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삿뽀로 철도청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다가 북해도 끝에 위치한 아사히가와라고 하는 곳으로 전근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노총각 집사는 먼 길을 마다않고 주일이면 어김없이 원래 다니던 교회로 돌아와 봉사하고, 다음날 다시 아사히가와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새로 발령받아 간 아사히가와와 삿뽀로 사이에는 “시오카리”라고 하는 고개마루가 있는데, 이 고개는 너무 높아서 기관차 두 대가 앞에서 끌어야만 넘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어느 날 이 노총각 집사에게 아가씨가 생겼습니다. 양가 가족들이 만나 결혼을 약속하고 날짜를 잡았습니다. 드디어 결혼할 날짜가 되어 노총각 집사가 삿뽀로로 돌아가려고 기차를 탔습니다. 그런데 그가 탄 기차가 “시오카리” 고개마루로 올라갈 때 즈음, 맨 뒤에 붙어 있던 두 객차의 연결고리가 끊어지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다른 객차들은 두 기관차가 끄는 힘에 의해 앞으로 올라가고 있는데, 마지막 두 객차만 다시 뒤로 내려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승객으로 타고 있던 노총각 집사가 상황을 파악하고 급히 가서 브레이크를 당겼지만,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두 객차에는 140여명의 승객이 타고 있었고, 만약 기차에 가속도라도 붙게 되면 뒤쪽 벼랑 골짜기로 떨어지는 것은 시간 문제였습니다.  

     그 때 노총각 집사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만약에 이 기차에 타고 계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예 주님… 제가 하겠습니다.” 그리고 노총각 집사는 즉시 기차에서 뛰어 내렸습니다. 큰 돌을 찾아 선로에 얹어 막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했습니다. 그래서 노총각 집사는 즉시 자신의 몸을 기차밑에 넣었습니다. 뒤로 밀려 내려가던 객차는 노총각 집사의 몸에 부딛치며, 서서히 서행을 했고, 그의 몸은 갈기갈기 찢겼습니다. 구조대가 왔을 때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몸에는 이런 내용의 편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나의 죽음을 필요로 하는 곳에 나는 비겁하게 살려고 하지 않겠다. 내가 죽을 자리가 있다면, 기꺼이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하겠다.” (⌜햇볕같은 이야기⌟ 최용우)
    희생입니다. 고귀한 140명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몸을 아낌없이 내 던진 희생입니다. 신약성경에서 헬라어로 “생명”이라는 단어는 크게 두 단어가 쓰입니다. 하나는 육신의 생명을 의미하는 “바이오스”이고, 다른 하나는 영적인 생명을 가리키는 “조에”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조에”가 쓰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소유하고 계시는 영원한 “생명(조에)”을 가져야 하는 존재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육의 생명보다 영의 생명에 더 무게를 두기 때문입니다.

     영적 생명인 “조에”와 관련하여 요한복음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말씀, 예수님) 안에 생명(조에)이 있었으니 이 생명(조에)은 사람들의 빛이라”(요1:4). 그리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를 향해서도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여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영원한 생명: “아이오니오스 조에”)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4-15)    

     140명의 승객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바이오스)을 던진 노총각 집사는 140명의 육적인 생명인 “바이오스”뿐만 아니라, 그들의 영적 생명인 “조에”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영적인 생명인 “조에”를 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육적인 생명인 “바이오스”의 희생이 있어야 함을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 위해, 육적인 생명인 “바이오스”의 희생과 영적인 생명인 “조에”의 희생을 동시에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갈1:4).

     이 글을 읽으시는 당신에게는 “조에”(영적인 생명)가 있습니까? 당신이 가진 “조에”는 누구의 “바이오스”(육신의 생명)의 희생으로 주어진 것입니까? 당신의 “바이오스”의 희생을 통해 “조에”를 누릴 사람이 당신 주위에는 없습니까? 만약 있다면, 당신의 “바이오스”를 기꺼이 내어 줄 각오가 당신에게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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